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 마리스 얀손스 &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2017. 12. 30. 00:44Classical Music


페.트.루.슈.카. 필자는 이 곡의 제목을 보면 연관성이라고는 개코딱지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플란더스의 개가 떠오른다. 플랜 다스의 계. 그래서 항상 주 멜로디에서는 댕댕이들이 초원을 뛰어다니는 이미지가 늘 연상되곤 한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지휘자들의 해석에 따라서 댕댕이들이 어떻게 뛰어다니는지도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곡은 공부할 때 브금으로 절때로 안틀어놓는다. 틀어놓았다가 머릿속이 개판된게 한두번이 아니다.




몇 일전에 래틀과 베를린필이 내한공연을 했을 때, 정말 오랜만에 다시 페트루슈카를 들어보았다. 이상하게 한 동안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손길이 안갔었는데 그 공연을 계기로 다시 이것저것 들어보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주로 3개의 음반을 듣는다. 하나는 래틀과 버밍엄심포니가 녹음한 음반, (그냥 옆에 디지털 콘서트홀 틀어놓을때도 있다), 그리고 레전드 음반으로 칭송받는 불레즈옹과 클리브랜드의 음반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가져온 얀손스와 RCO의 음반이다. 그럼 왜 나머지 두 개의 음반은 내팽겨쳐두고 이걸 들고 왔냐고? 음반 커버가 제일 예뻐서. 필자는 언제나 시각적 자극을 중요시한다. 햩


얀손스의 스트라빈스키는 꽤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아마존같은 곳을 들어가보니, 양놈들은 이 음반을 별로 안좋아하는 듯 했다. 그럼 어떠하리. 필자는 마음에 든다. 불레즈가 너무나 차갑고 (정말 찔러도 피도 안나올꺼같이 연주한다) 래틀이 미친놈처럼 날뛴다면 얀손스의 음반은 그 사이를 아주 보기좋게 미꾸라지처럼 파고들었다. 얀손스의 섬세함과 따뜻함은 기본으로 깔고가고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한도에서 충분한 리듬감과 색채감을 발휘해주고 있다. 두 음반의 장점을 모두 취하면서 본인의 해석을 잘 녹여낸 케이스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얀손스의 다른 스트라빈스키 음반을 들어봐도 이런 경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불새와 봄의 제전.


물론 이런 포지션을 두고, 니입맛도 아니고 내입맛도 아닌 혼종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균형감있는 해석도 설득력이 충분히 있다면 그것또한 명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럼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을 듯 싶다. 얀손스가 극한으로 밀고간 섬세함과 따뜻함이 보여주는 페트루슈카의 맛 말이다. 얀손스의 진가는 4장에서 발휘된다. 그 누구도 얀손스처럼 페트루슈카를 동화처럼 풀어낼 수 있는 지휘자는 없을 것이다. 정말 온동네 개들이 평원에서 뛰어다니는 평온함을 드라마틱하게, 다르게 표현하면 RCO의 최고의 장점을 살려가면서 풀어낸다. 묵직하지면 유난히 부드럽게 들리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밑바탕에 플룻과 바이올린이 사뿐히 올라타면서 벨벳사운드의 정수를 뿜어낸다.(4장: Dance of Ballerina) 이런게 비단결같은 소리이다. 


함께 커플링되어있는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도 훌륭하다. 라흐마니노프의 우수와 리듬감을 동시에 살려야하는, 아주 괴상한 곡이다. 얀손스도 그 점을 인지했는지 리드미컬한 부분이 상당히 강조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리듬감보다는 얀손스의 서정성이 더 부각된다. 혹시 이 곡의 서정성보다 리듬감을 더 중요시 여긴다면, 별로 안좋아할 수도 있겠다. 


      


P.S 

#1 그러고보니 멍멍이의 이름이 파트라쓔였네.

#2 하트하트핫트. 하트누르면 새해복많이 받습니다. ^____^

#3 래틀 음반커버는 원래 엄청 촌스러운데 워너에서 재발매했어요. 쫌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