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피아노 5중주 2번 & 현악 5중주 - 파벨하스 콰르텟

2017. 10. 29. 01:00Classical Music


체코 출신의 뜨거운 현악4중주단이 자국의 위대한 음악가의 레파토리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이미 파벨 하스 콰르텟이 연주한 드보르작 음반(현악 4중주 12,13번) 은 그라모폰 어워드, 올해의 음반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이런 이유때문에 그들이 드보르작을 들고 다시 청중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자연히 설렐 수 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파벨 하스 콰르텟의 멤버도 아니면서 떡하니 중앙을 차지한 보리스 길트버그이다. 아마 익숙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자이며 (몇년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재작년쯤? 서울시향에 협연을 하러 내한했었다. 당시 레파토리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는데 필자도 이 공연을 갔다왔었다. 상당히 귀여웠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2부에 비해서 기억이 옅다. 2부가 워낙 훌륭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라하브 샤니라는 이스라엘 지휘자가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을 지휘했었는데 음악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유들유들 야리야리해서 마지막에 거대한 성을 쌓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울려퍼진다. 아무튼 보리스 길트버그는 매우 반가운 얼굴이다. (다만 몇년 사이에 폭삭 늙었다.)


현악 4중주라면 모르겠지만 여기에 피아노가 들어온 이상 실내악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은 피아노가 맡을 수 밖에 없다. 피아노 연주자가 소리의 전체적인 구조를 받쳐주지 않으면 음악이 흔들흔들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길트버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길트버그는 파벨 하스 콰르텟의 소리를 전부 휘감아주지는 못한다. 넓은 바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독립된 악기처럼 연주한다. 파벨 하스 콰르텟의 연주 자체가 그렇기에 이 부분이 논리적으로는 맞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또한 과거 거장들이 만들어내던 독특한 카리스마 내지 존재감 (음색)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필자는 쉬프와 파노차 콰르텟의 연주를 즐겨 들었는데 쉬프의 터치를 길트버그가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완벽히 따라간다면 카피캣이 되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길트버그만의 터치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연주는...기똥차게 잘한다. 못한다는게 아니다. 아쉽다는 것이다!


파벨 하스 콰르텟의 연주는 우리가 다른 음반에서 익히 들어오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사중주단은 각자 독립된 사운드를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서 음악을 밀도있게 만들어가는데 큰 재주가 있다. 모든 파트의 소리가 고르게, 강하게 울려퍼지면서 절대로 따로놀지 않는다. 특히 이들이 보여주는 소리의 밀도는 들을 때마다 경이로울 정도이다. 그런 모습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화되었으면 심화되었을 것이다. 피아노 5중주 2번에서 울려퍼지는 현악파트의 밀도감은 매우 상당하다. 1악장은 말미로 갈수록 그 밀도가 더더욱 높아져서 마지막에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듯하다. 이어서 연주되는 2악장의 빛나는 비올라 솔로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섬세함이 울려퍼진다. 보통 절절함의 음색은 첼로의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편인데 이 부분의 비올라 솔로는 절절함에다가 처량함까지 잘 표현하였다. 뒤이어 나오는 동일한 첼로에 멜로디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첼로 솔로가 끝난 뒤 펼쳐지는 음의 향연은 2악장의 앞뒤를 명확하게 구별해주며 대조를 이루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뭔가 확 빨려들어갔다가 나오는 느낌이다. 


뒤이어 연주되는 현악 5중주의 분위기는 현악 4중주 '아메리칸' 이랑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제일 많다. 만약 앞서 출시되었던 드보르작 음반의 신들린 뽕끼에 취했고 허우적거리면서 들었다면... 그냥 들으면 된다. 아메리칸에서 연주되었던 그런 신들린 리듬감, (이것은 아마 체코사람 아니면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이 여기서 다시 조금은 색다르게 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