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비창

2017. 10. 20. 16:22서울시향 서포터즈



한국에 스티븐 허프가 리사이틀이 아닌, 협연으로 왔다는 것 자체가 이슈인 공연이었다. 거기다가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과거 허프가 라흐마니노프로 그라모폰 상을 수상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공연이 기대될 수 밖에 없었다. 


서곡으로 들려준 Schreker 의 Ekkehard는 연습할 시간이 없었던 듯 싶다. 음표의 나열, 그 이상과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스티븐 허프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스티븐 허프의 타건은 '정확하다' 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을 듯 하다. 이 단어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가 미스터치가 없는, 매우 기계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콘서트홀에 울린 소리들은 모두 하나하나 살아있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가 클라이막스에 다가갈수록 주체를 하지 못하고 타건을 뭉갠다. 그렇지만 허프는 마치 모든 것을 전부 알고있다는 듯이 차분하지만 매우 강하고 정확하고 또렷하게 음들을 콘서트홀에 흩뿌렸다. 불만인 부분이 있어야 이것저것 이야기를 풀어놓을텐데 불만인 부분이 없기에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 정말 좋았다. 내후년에 또 왔으면 좋겠다. 공연기획팀의 섭외력을 믿어보쟈


사실 라흐마니노프보다 차이코프스키 비창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이번 서울시향의 공연에 대한 후기를 보니 '대체적으로' 악평이많았다. 그리고 현장에서도 '정명훈' 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들었다. 그렇지만 난 이번 공연에 대해서 매우 만족한다. 왜 이런 간극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추측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서울시향의 관객은 정명훈의 '비창' 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


정감독의 비창은 매우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상당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또 그 나름대로의 감동도 있었다. 비록 음반은...슬프게 나왔지만 라이브는 무척 좋았던 적이 많았다. 집중도도 좋았고말이다. 그렇지만 항상 정감독이 만드는 음악의 한계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작위성' 이다. 그 작위성들이 만나서 사실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많이 만들어지지만 음악 전체를 놓고 본다면 통일성과 구조적인 면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정감독의 음악은 부분부분 상당한 몰입감을 주는 요소들이 많고 이것을 잘 활용하지만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큰 줄기가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제는 이런 스타일과 정 반대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우선 사운드를 살펴보고 싶다. 시나이스키는 그동안 서울시향이 정감독과 만들어오던 절대적인 음량보다 훨씬 낮은 음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했다. 정감독보다 작은 편성으로 연주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시나이스키는 소리를 하나씩하나씩 쌓아가는 해석을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듯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그동안 접해지 못했던 다양한 숨어져 있던 소리들이 주 멜로디와 얽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절대적인 음량이 작기 때문에 이 과정 모두 비창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브루크너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크게 본다면 시나이스키는 자신이 이 곡에서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표현했고 그 과정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악장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당히 세밀하게 다루었고 곡 전체에서 가장 강조할 '비창' 을 4악장 말미에, 매우 화려하면서 임팩트있게 끌고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콘트라베이스의 어둑어둑한 면도, 비록 음량이 작고 과거의 유화같은 짙고 짙은 사운드는 아니어도 마치 실내악같은 투명한 해석으로 끌고가면서 나름 성공했다. 이 부분을 유심히 봤는데 수석의 활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다가온 듯 했다. 모든 소리가 다 사라지고 마치 혼자 이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듯이 말이다.


이제는 정명훈의 비창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 리뷰에서 까먹고 안쓴것 듯 (추가 10.20 밤 9:30)


클라리넷 수석말고 목관은 좀 심각하다

저번부터 피콜로는 나홀로콜로

금관의 ppp 는 인상적이었다



+ 요즘 관객들중에 저격해야할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스나이퍼를 준비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