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문지영과 마에스트로 벤자고

2017. 9. 17. 22:28서울시향 서포터즈



작년에 객원지휘자로 와서 드보르작 교향곡 7번을 연주했을때는 꽤나 호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비록 다른 일정과 겹쳐서 직접 현장에서 듣지는 못했었지만, 지인들을 통해 들은 그 날의 공연은 꽤나 만족도가 높았었다. 게다가 직접 연주를 해봤던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작년의 기량만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듯 하다.


먼저 콘서트의 포문을 열었던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는 연습량이 부족했다는 것을 첫 음부터 증명했다. 이후에도 불안불안한 모습을 연이어 보이고, 각 파트간의 합도 잘 맞지 않았다. 이 불안한 모습은 문지영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먼저 문지영의 연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전공자도 있다) 문지영이 연주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악보에 써있는 음표 몇개를 빼먹고 패달링으로 뭉게버렸다는 증언을 꽤 들었다. 한 명의 클래식 음악 팬으로서 실망스러운, 작곡가에 대한 존경은 보이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앵콜로 선택한 '엘리제를 위하여' 를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솔직히 너무나 당황스러운 앵콜이었다. 과연 그 곡을 선택한 것이 진정 관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처사일 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2부에서 이어진 슈만 교향곡 3번은 음반에서 들려주었던 해석을 거의 그대로 서울시향과 함께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기본적으로 벤자고는 화려한 스타일의 슈만을 지향하는 듯한 모습을 음반으로 들려주었다. 그런 해석 자체는 호불호를 떠나서 해석의 한 가지 종류라고 생각하므로 충분히 존중한다. 다만 롯데 콘서트홀이라는 조건과 만나다보니, 벤자고가 표현하고자했던 다른 내용들은 울림속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벤자고의 해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곡을 덩어리 덩어리로 짤라놓은 느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울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에 선보였던 루바토는 그 어떤 음반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던, 다소 이질적인 해석이었다. 후에 이어지는 선율의 드라마틱한 면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곡의 전체적인 구조면에서 보자면, 큰 덩어리들이 놓여져있고 그것들을 연결해주는 브릿지의 존재는 매우 희미했다. 그렇기에 '깍뚝썰기' 라고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임지휘자가 되었든, 예술감독이 되었든 빠른 시간안에 구심점을 찾아야할 듯 하다. 리더의 부재는, 춘추전국시대를 불러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