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베아트리체 라나의 차이코프스키

2017. 9. 30. 02:13서울시향 서포터즈



오늘 공연은 예전부터 기대가 되는 공연이었다. 샤오치아 뤼는 서울시향과 차이코프스키의 에브게니 오네긴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적이 있는 지휘자이다. 그 때의 평이 워낙 좋았기에 이번에 보여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도 엄청 기대를 했었다. 베아트리체 라나는 그라모폰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이다. 사실 이런 것에 신경은 별로 안쓰지만 그래도 그녀의 실력을 들어보고 싶었기에 애플뮤직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꽤 여러 음반이 있었는데 서울시향과 연주할 차이코프스키도 있었다. 들어보니 그라모폰이 괜히 선정한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다른 음반인 쇼팽도 나쁘지 않았고 바흐의 골든베르크도 좋았다. 그렇지만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높은 법' 이라는 문구를 늘 가슴속에 새기고 다녔으나 오늘은 기대가 높았는데 기대치만큼 해줬다.


원래 이 곡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악장 처음 빼면 너무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도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그 어떤 해석이 되었든지, 필자에게는 이 지겨움을 해소해주는 것이 귀를 사로잡는 것이었다. 첫 시작은 그냥 평범하게 들렸다. 사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들었으면 첫 시작을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롯데홀에서 첫 시작은... 이후의 목욕탕에 적응하는 과정일뿐이었다. 아무튼 그런 서주를 거친 뒤 라나는 정말 힘!좋게 곡을 잘 이끌고 나갔다. 그런데 더 흥미로웠던 점은 라나의 파트너를 이루고 있는 샤오치아 뤼와 서울시향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서울시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현파트는 과거 서울시향이 한창 잘 나갈 때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지휘자의 힘인가, 아니면 객원 악장의 힘일까. 듣는 내내 이렇게 합이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박자가 약간 밀리는 부분이 2군데정도 있었던 듯 하지만 롯데목욕탕의 영향이라고 치자)


라나의 해석은 그녀가 음반으로 들려준 것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실황으로 접한 그녀의 연주는 음반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성능 좋은 스포츠카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듯한 연주였다. 그렇다고 마냥 거칠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 KTX가 고속으로 달리는 부분에 들어가면 소음이 급격히 줄어들듯이 2악장으로 들어서면서 보여준 그녀의 서정성은 1악장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서울시향에 이에 부응하듯이 굉장히 세심한 연주를 보여주었는데 샤오치아의 노련미가 엿보였다.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면서 최대한 활을 많이 사용하고 음과 음 사이를 아주 부드럽게 연결해서 소리가 처음부터 계속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2부의 쇼스타코비치도 마찬가지였다) 음... 건축학도답게 표현하자면 마치 F.LWright 와 Mies 의 평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3악장은 다시 서울시향의 강력한 Driving Force 가 귀에서 계속 맴돌았다. 라나의 잘 연주된 부분을 서울시향이 그대로 받아서 더욱 더 Grande!! 하게 펼쳐내는 모습, 특히 마지막에 샤오치아가 만든 거대한 소리의 덩어리는 음반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소리가 콘서트홀에 꽉꽉 채운 느낌이 정말로 좋았었다. 게다가 1악장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해준 샤오치아 특유의 리듬감까지 모든 것이 정말 좋았다. (샤오치아의 리듬감 및 스타일은 후반으로 갈수록 중국 무술을...떠올리게 했다. 귓가에서 맴도는 와호장룡... 나만의 착각인가 아닌가)



이어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인발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이후로 최고의 쇼스타코비치였다. 그 때 인발의 공연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붕은 물론이고 객석을 지탱하고 있는 철골까지 모두 부서버릴 기세로 연주되었던... 무시무시한 공연이었다. 오늘의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샤오치아는 서울시향이 만들 수 있는 소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계속 시험해보고 싶었던 듯, 소리를 계속 끌어올리면서 앞뒤의 대조를 더욱 더 명확히 해갔다. 여기서 팀파니는 아주 적절한 시점에, 강!려!크! 하게 내려치면서 앞뒤의 내용을 적당히 끊어주기도 하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했다. 후에 커튼콜때 관객들로부터 많은 환호를 받을만 했다. 


이 곡은 1악장의 처음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 쇼스타코비치의 그 다크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그 이후에 나오는 음산함이 살아나기 힘들다. 샤오치아는 첫 시작을 매우 안정적이고 인상적으로 처리했다. 첼로로는 만들 수 없는 그 음산함을 진한 콘트라베이스를 추가해 아주 맛깔나게 구현했다. 이후  2악장, 일명 '인민의 롸큰롤'. 단순히 빠른 템포의 강력한 곡이 아닌, 그 안에서도 매우 다채로운 비트를 만들어냈다. 특히 마지막을 매우 깔끔하게 처리해서 더욱 더 기분이 좋았다. 


4악장은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4악장은 5분 전후로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그 5분에 다가갈수록 전체적인 소리가 줄어들면서 소리없는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데 이 부분에서 플룻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허에 울려퍼지는 것은 거의 플룻(+피콜로) 소리 하나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플룻은 그 긴장감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하는데 너무 기계같은 소리만 울려퍼졌다. 물론 피콜로가 고음악기로 세심한 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샤오치아의 큰 그림을 완성시키는데 장애가 되었다는 것은 콘서트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 부분말고, 뒤이어 나오는 또 다시 시작되는 '인민의 롸큰롤' 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또 다시 2악장과 같은 음향폭탄이 아주 시의적절하게 클라이막스로 관객들을 잘 이끌어주었다. 이 부분에서 샤오치아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오는 길이 귀를 이어폰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이런 날은 이어폰꼽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