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카르미나 부라나 / 2017.07.05

2017. 7. 6. 01:00서울시향 서포터즈



다시 직장인이 되었으므로 카르미나 부라나를 예습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처음과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O Fortuna' 만은 너무 익숙했기에 이것만 믿고, 또 먼저 예습을 한 친구의 말만 믿고 오늘은 그저 세계 초연을 듣는 마음으로 예당을 방문했다. 먼저 예습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른 오페라보다 훨씬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1시간동안 절대 지겹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적중했다. 전혀 지겹지 않은, 월간 SPO에 써있는 단어를 빌리자면 진정한 '20세기의 클래식' 이었다.


먼저 늘 CF에서만 듣던 O Fortuna는 정말 압권이었다. 이브 아벨이 워낙 오페라에 능통한 지휘자이기 때문에 극적 효과를 더 부각시킨 것인지는 잘 판단이 되지 않지만 오늘 이브 아벨이 들려준 음향은 과거 인발이 서울시향에 처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을 지휘하러 왔을 때 콘서트홀을 울렸던, 그 음향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여기에서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연주자는 다름 아닌 팀파니였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의 팀파니주자는 늘 오실때마다!!!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으시는 흑형 팀파니 연주자. 이 분이 팀파니를 잡으시면 정말 소리가 다르다는 것이 한번에 느껴진다. (팀파니에서 뭔가 소울이 느껴진다) + 칼같은 박자로 확 치고들어오는 그 포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과연... 카스트라토를 대체하는 목소리로 손색이 없었다. 어떻게 남자의 목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카운터 테너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내내 이 생각만 반복하였다. 아쉬운 것은...구운 백조만 나오시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백조스테이크를 먹어보고 싶다  후반부에 펼쳐진 캐슬린 김의 노랫소리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막을 다루기 전의 캐슬린 김의 목소리와 마지막의 반복된 O Fortuna 는 정말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바리톤으로 참가한 마르쿠스 브뤼크의 연기도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남성합창단과 주고받던 장면이 기억에 짙게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곡을 거의 모르고 있었기에 공연중 틈틈히 SPO잡지를 슬쩍슬쩍 보았는데 마지막에 이루는 대비가 무척 인상적일 것이라고 암시를 해주었다. 과연 그러하였다. O Fortuna가 처음에 연주된 뒤에 그러한 압도적인 음향을 구현하는 막은 중간에 없었다. 더군다나 바로 앞에 있었던 제3부가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몸과 마음도 나른해져있던 터에 도대체 어떻게 대비를 이룬다는 것인지 꽤 궁금하기도 했었다. 마지막에 O Fortuna가 다시 연주될 때는 곡의 해설과는 별개로 사랑이 무참하게 짙밟혀지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마치 내가 어장관리 당한 느낌? 이라도 들듯이, 모든 것은 이미 비극이 예고되어있었다는 드라마틱하고 묘한 기분이 교차했을 때 어느덧 박수가 나오고 있었다.


또한 듣기는 좋았지만 너무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같은 20세기에 작곡이 되었지만 쇼스타코비치처럼 약간은 요상한 화음도 있지 않았고, 말러처럼 극한으로 밀어붙인다는 듯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여러 현대적 화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탓에 듣는 내내 낯선 익숙함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잘 연주되지 않지만, 충분히 납득할만한' 레파토리가 꾸준히 무대에 올라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