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루텐] 라 를리지외즈, '자스민X머스크'의 양면성

2018. 12. 9. 01:52Perfume




#01 영업당함


몇 달전에 영화를 보러 코엑스에 갔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할 일이 없어서 현대백화점을 돌아다녔었는데 2층에 향수 코너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둘러보던 중 원래는 불리1803을 가려고 했으나 그 앞에 말로만 들어보던 세르주 루텐 매장이 있어서 들러봤었다. 그날 내가 기억하기로 너무 더운 날이어서 샌들에 반팔에 반바지입고 돌아다녔었다. 즉 완전한 동네 아저씨 패션으로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런 차림으로 향수가게에 들렸으니... 제대로 응대받을리가 만무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르주 루텐 매장의 매니저님께서 영업을 시작하셨다. 

원래는 '로' 밖에 아는게 없어서 '로' 를 맡아봤더니 그냥 그랬다. 그래서 혹시 추천해줄만한 향수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이것을 너에게 반드시 팔고야 말겠어!!!" 라는 무드로 향수 추천을 시작해주셨다. 좋아하는 향, 분위기, 브랜드등을 물어보시더니... 라 를리지외즈를 들고 오셨다. 다른 하나도 있었는데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라 를리지외즈를 딱 허니 들고 계시면서 혹시 회사에서 수트를 자주 입으시냐, 안 입으시냐로 시작해서 이것저것을 캐묻더니 회사에 수트입고 출근할 때 이것을 뿌리면 너무나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더불어 이미지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는 구체적인 논거까지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완전히 영업을 당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인터넷 면세점을 뒤적뒤적 거리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였다. 그렇다. 나는 넘어갔었다.

* 참고로 현재 (2018.12.09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세르주 루텐 매장은 철수했다. 이제 서울에서는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서만 볼 수 있는 듯 하다. 신세계 강남점 2층의 향수코너에 가면 메종 프랑시스 커정 매장과 함께 있다. 


#02 노트 - 자스민, 머스크, 인센스, 시벳(?)


이건 자스민 향수이다. 자스민 향을 모티프 이야기에 수녀를 가져다 붙였다. 자스민이 상징하는 그런 순수함을 대변해줄 수녀가 머스크 향과 만나서 타락한 수녀가 되어버렸다. 루텐의 제품 설명에도 그렇게 비슷하게 되어있더라. 카톨릭 신자로써 이것은 '신성모독' 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이미 가라신자가 된지 오래... 향만 좋으면 되지 무엇이 문제겠소. 아무튼 자스민의 순수함이 머스크와 만나 매우 복잡다단한 향으로 변했다. 자칫 두 향만 섞어놓은다면 상당히 어색해질 수 있겠지만 여기에 인센스가 첨가되어서 두 상반된 향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서 향 자체가 완성되었다고 보는지, 다른 향수들처럼 많은 향료가 섞여서 들어가있지 않고 저거 딱 4개만 들어가있다. 이미 자스민 - 인센스 - 머스크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이 다른 향료를 굳이 섞지 않더라도 너무나 다양한 씬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향료가 섞인다면 Too Much 인 것 같다. 

근데 저 맨 마지막의 귀여운 고양이는 무엇인가! 맨 처음에 봤을 때는 솔직히 고양이를 넣었다는 말인줄 알았다. 저 노트 구성이 정말 직관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나 말고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 고양이는 시벳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향고양이이다. 그 루왁커피를 만들어내는 사향고양이 말이다. 이 고양이의 똥... 그리고 똥냄새가 시벳이라고 한다. 이 냄새가 근데 그렇게 오묘하게 냄새는 구린데 기분은 좋다고 한다. 나의 코는 아직 그 레벨까지는 못가서 시벳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ㅠㅠ


#03 지속력과 확산력 - 퇴근할 때는 다시 한번 뿌려줍시다.


아침에 뿌리고 나가면 점심 지날 때 쯤에는 향이 옅어지기 시작해서 오후 3-4시가 되면 거의 미세한 잔향만 남아있는 수준으로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저녁 약속이 있다면 공병에 담아서 향수를 뿌린 곳에 한번씩만 더 덧칠해주면 밤까지 무난하게 지속될 듯 하다. 그리고 확산력이 킬리안 향수처럼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향수를 뿌렸다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듯 하다.


#04 한겨울은 글쎄?


기본적으로 플로럴 계열의 향수이다보니 봄과 가을에 상당히 잘 어울린다. 한여름이라고 해도, 너무 진하게만 뿌리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듯 하다. 파우더리한 느낌은 다른 White Floral 계열의 향수보다 상대적으로 덜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라면 머스크향일텐데 자스민의 향도 같이 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듯 하다. 

오히려 한겨울에는 향을 뿌렸지만 큰 감흥은 느끼지 못할 듯 하다. 겨울에는 차라리 더 존재감이 확실하게 부각되는 향이 더 좋을 듯 하다. 뭐 이를테면... 킬리안의 나랑잘래? 정도가 있지 않을까?


루텐루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