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4. 21:33ㆍReview
사실 오늘 레파토리를 보고 좀 실망했었다. 그 많은 곡들중에 하필 베토벤 교향곡 4번이라니. 그래도 핀란드답게 시원시원한 곡을 들려주었으면 했지만 사라스테가 가지고 온 고향의 레파토리는 시벨리우스의 '전설' 뿐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은 금방 잊혀졌다. 시벨리우스의 '전설' 을 정말 전설스럽게 연주할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
이 곡에 대한 사전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최근에 워낙 정신이 없는 생활이기도 했거니와 베토벤 교향곡 4번이라는 메인프로그램에 시큰둥해서 찾아볼 생각도 안했다. 그저 시벨리우스의 잘 알려지지 않은, 꽤 매력적인 곡이라고만 생각하고 콘서트홀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왠일인가. 스믈스믈한 현의 아르페지오위에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하나씩 얹혀가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었다. 마치 눈덮인 북유럽의 설원에 와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편으로는 영화 '트와일라잇' 까지 생각났었다. 침엽수림에 소복히 쌓인 눈이 연상되는... 그런 음악이었고 그런 연주였다. 특히 이 곡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멜로디는 한동안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맛깔나게 연주해준 각 파트와 특히 비올라 수석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비올라라는 악기를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를 처음으로 느꼈다.
바로 이어진 브렛딘 비올라 협주곡. 같이간 친구말로는 인생계획 세우기 참 좋은 곡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대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악기들의 다양한 테크닉과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의 메인 디쉬인 베토벤 교향곡 4번이 연주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몇 번 접해보았고 꽤 자주 들었다. 아마 가장 최근에 들었던 실황연주는 이반 피셔와 RCO의 베토벤 사이클이었던 듯 싶다. 그 이후에는 처음 듣는 곡이다. 그때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오늘은 정말 담백한 곰탕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아주 적절한 장조림이 들어가서 듣는내내 즐거웠다. 특히 2악장에서 클라리넷 수석님이 보여준 그 아름다운 연주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라스테도 이를 느꼈는지 커튼콜때 가장 먼저 클라리넷 수석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아주 아름다운 솔로였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급작스럽게 하강하는 첼로도 정말 멋졌다. 이상 엔더스가 객원으로 와서 그런지 더 잘 연주하는 듯 했다. 이제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완전히 탈피한 듯한 서울시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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